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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시카고 블루맨을 떠나보내며

시카고 리글리필드 야구장 인근 홀스테드와 브라이어길이 만나는 곳은 젊은 사람들이 붐비는 소위 말하는 번화가다. 대중교통수단이 많고 인근에 대형 병원과 쇼핑센터, 음식점, 주점 등이 밀집해 있어 항상 보행자가 북적되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활력이 넘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CTA 벨몬트역도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 시카고 네이버후드로는 레익뷰 지역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브라이어 스트리트 극장이 위치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극장에서 30년 가까이 장기 공연을 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블루맨이다. 이 작품은 출연자가 대화를 하지 않는 마임극이다. 대신 머리와 손 부분에 진한 파란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고 검은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출연자가 몸짓으로만 연기한다.   6년 전쯤 한국에서 온 고등학생 그룹과 함께 이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전까지는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블루맨 공연을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실 200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를 쓴 경험이 있다면 블루맨은 인텔 TV 광고를 통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먼저 접했을 것이다. 당시 거의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는 인텔칩이 들어가 있었는데 인텔이 신제품을 광고하면서 블루맨을 투입한 광고를 만들어 전세계에 내보냈기 때문이다.     흰색 바탕의 스튜디오에서 파란색 블루맨들이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고 공연에서도 보여주는 파이프를 이용한 연주 실력을 뽐내다가 펜티엄 3, 펜디엄 4 프로세서를 소개하는 TV 광고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블루맨을 알리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관람한 블루맨 그룹 공연도 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3명의 블루맨들이 출연해 다양한 연기와 율동, 공연 등을 펼친다.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안개를 이용해 객석까지 현장감을 살리는 장치를 했다는 점과 아이폰을 이용해서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던 것,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와 공연을 함께 꾸민다는 점 등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관람객들이 기념품을 구입하는 기프트 샵에 출연진들도 나와 정겹게 기념 사진을 촬영해 주기도 했다.   당시 공연장에는 시카고 주민들과 함께 타주, 타국에서 온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이렇게 시카고의 명물이 된 블루맨 공연이 시카고에서의 장기 공연을 끝낸다고 한다. 구체적인 시카고 무대 공연 중단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려워진 시카고 공연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시카고에서 끝내는 무대는 올해 봄 플로리다주에서 이어진다고 한다.   시카고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함께 볼 것이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시카고 브로드웨이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이 지금도 무대에 오른다. 히트한 작품도 있지만 시카고에서 첫 무대를 여는 작품도 종종 있다. 시카고에서 역시 장기 공연을 펼쳤던 뮤지컬 ‘해밀턴’을 비롯해 ‘위키드’ 등 시카고에서 성공한 유명 작품도 즐비하다.     무엇보다 시카고의 풍부한 문화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공연장을 꼽는 주민들이 많다. 시카고에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있고 리릭 오페라가 활동하고 있으며 시카고 시어터와 굿맨 시어터, 해리스 시어터 밀레니엄파크와 같은 무대가 많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준 높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조금만 떨어진 도시에 가더라도 이같은 문화적 다양성을 느낄 수 없는 곳이 많다.   시카고에서는 또 여름이면 야외 공연도 풍성하다. 다운타운 밀레니엄파크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에서는 무료로 영화 상영과 오페라, 클래식 무대가 펼쳐지곤 한다. 서버브에서는 라비니아 공연을 즐기는 평범한 가족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카고다.   블루맨 공연이 시카고에서 중단된다는 소식에 아쉬워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까지 시카고에서는 이렇게 쉽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즐비하다.   가끔 한국에서 시카고를 찾는 사람들에게 다운타운에서 즐길 거리는 소개해주곤 하는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곳이 재즈 공연이었다.     크지 않고 화려하게 내외부를 꾸미지도 않은 다운타운 골목길에 위치한 재즈바에서는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수준높은 재즈 공연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데 시카고의 멋진 야경과 함께 매우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다.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무대가 많다. 다만 잠시 눈을 돌려 이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었고 시간적 여유가 따라주지 않았을 뿐. 그러니 찾으려고 하는 개인적인 관심과 투자만 있으면 다른 것은 이미 다 갖춰진 셈이다. 박춘호 / 시카고지사 기자기자의 눈 시카고 블루맨 시카고 주민들 시카고 리글리필드 시카고 네이버후드

2025-01-16

[기자의 눈] 알 아사드의 몰락과 김정은

50년간 시리아를 통치해온 알 아사드 가문이 마침내 몰락했다.   지난해 12월 7일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비밀리에 도주했다. 이에 따라 13년간 이어진 내전도 종식될 수 있을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알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 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하는 전문가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지난 7일 다마스쿠스 공항은 지난해 12월 초 이후 처음으로 운항을 재개했고 많은 시민들이 축제 같은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새로 들어서는 정치 지도자들 역시 평온한 정권 교체를 약속했다. 다만 경제를 악화시킨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알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 바로 해제되지 않은 점이 시리아의 가장 큰 고민이다.   독재자 알 아사드의 야반도주를 보며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 정권의 몰락을 상상해봤다. 알 아사드의 측근들은 7일 밤 시위대와 타협하는 방안의 연설을 준비했다. 촬영에 사용될 카메라와 조명 등도 설치됐다. 시리아의 국영방송이 이를 보도할 방침이었다.   그런 충성심을 보인 직원들을 버리고 알 아사드는 말 한마디 없이 도주했다. 이에 직원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대통령궁으로 몰려오는 시위대가 두려워 도주한 것인데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아 직원들은 연설 준비를 하며 대기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몰려오는 시위대를 피해 도주했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대통령궁 문도 못 잠그고 도망쳐 시위대가 점령하게 됐다.   지난해 연말부터 전세계는 여러 큰 뉴스를 접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참전, 시리아의 몰락, 그리고 미주 한인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봤을 역대 최악의 LA 산불 사태.   잠잠하나 했던 북한은 다시 극초음속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며 한반도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규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 김정은과 다시 회담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12일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은을 알고 있고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화염과 분노’에서 ‘러브레터’로 이어진 시기가 재현되려나.   2024년은 독재자 및 철권 통치자들에게 있어 안 좋은 한 해였다. 15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오던 방글라데시의 여자 수상 셰이크 하시나가 학생시위대에 쫓겨나 인도로 망명했다. 이란에서는 온건·개혁 성향인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취임한 뒤 성직자 집단들의 힘이 악화하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가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야당 인사 탄압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세가 커지고 있다. 미얀마의 군부 정권(junta) 역시 반군과의 오랜 내전으로 ‘파탄 국가(failed state)’라는 오명을 썼다.   이란은 각종 제재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주민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및 석유 매장 국가임에도 전력난으로 정전이 빗발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고문과 강제 노동, 강제 낙태가 만연하고 한국 방송을 봤다고 사형되는 전 주민이 감옥인 나라가 북한이다. 언론이 철저히 통제돼 내부 소식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북한 주민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쿠데타라는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 고위급 탈북자의 전언이다.     올해는 해방 80주년을 맞는 해다. 북한 주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또 한 번의 해방을 맞기를 바란다. 모든 독재자는 망하는데 김정은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알 아사드와 같을까 더 비참할까. 닿을 수는 없겠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도 새해 인사를 전한다. 김영남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김정은 아사드 아사드 정권 아사드 대통령 아사드 가문

2025-01-12

[기자의 눈] 자랑스런, 부끄러운 탄핵

미국에서 바라본 한국의 탄핵 사태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공존한다.   주한미군으로 2차례 복무한 육군 중사를 최근 만났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의식이 부럽다”며 한국의 탄핵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도자를 국민이 끌어내린 게 대단하다”며 “국민이 나서서 민주주의 절차를 주도해 이뤄낸 성과”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탄핵 사태에서 자랑스러운 점이 있다면 전 세계에 한국 국민의 강력한 민주주의 의식을 보여주며 ‘국가=국민’ 공식을 증명해냈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이어 국민은 다시 한번 거리로 나왔다. 분노와 감정에 휩쓸려 강경한 시위를 펼치기보다, 아이돌 가수 응원봉을 들고 K팝 노래를 부르며 평화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러한 국민의 품격있는 정치적 참여는 세계적인 주목을 모으기 충분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뜨린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 탄핵안이 가결됐다”며 “시민들로 가득 찬 거리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는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신호”라는 조앤 조 웨슬리안대학 동아시아학 교수의 분석을 전했다.   주류 언론들의 평가처럼 성숙해진 한국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은 단순히 투표로 국민대표를 선출하는 수준을 넘어, 대표자들에게 지속해서 책임을 묻고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이에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일부 여당 의원들이 응답했고, 결국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가결됐다.   반면, 자랑스러운 모습 뒤 부끄러운 그림자도 자리 잡고 있다. 탄핵은 극히 예외적이고, 중대한 사유에 한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야당은 헌법적 도구인 탄핵을 정치적 도구로 변질시켜버렸다. 이에 정치적 불안정성을 고조시키고, 외교무대에서 코리아 패싱 우려를 다시 한번 초래했다.   야당은 정치적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윤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했다. 물론 명분은 있었다. 한 총리가 12.3 비상계엄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양곡관리법 등 쟁점법안 6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아울러 한 총리는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도 미뤘다.   하지만 설사 한 총리가 탄핵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해도 야당은 정부와 정치적 협력을 통해 국정 정상화를 이루고 정치적 대립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러나 야당은 지속해서 선을 넘으면 탄핵하겠다는 등 한 총리를 향해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고, 결국 그도 탄핵했다.   이를 두고 AP통신은 지난달 27일 “두 명의 국가 최고위직 탄핵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악화시키고, 경제적 불확실성을 심화하는 동시에 대외 이미지를 손상시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 권한대행 탄핵은 정치적 혼란 해결 과정에서 한국 양당의 협력이 실패한 결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깊어짐에 따라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한국은 ‘트럼프발 불안정성’을 걱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4년간 한미관계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기 트럼프 정부와의 물밑접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한국은 연속 2차례 탄핵으로 튀는 성격의 남의 나라 대통령을 걱정하다가 되레 얼마나 더 튈 수 있고 불안한 나라인지 보여주고 말았다.   이번 탄핵 사태는 국민 주권 실현의 계기가 됐지만, 동시에 탄핵이 정치적 도구로 변질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줬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대립 대신 협력을 통해 국정 안정과 외교적 신뢰 회복에 집중하길 기대한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탄핵 대통령 탄핵소추안 탄핵 사태 한국 국민

2025-01-07

[기자의 눈] AI가 4초만에 만든 여행계획

“평소에 나는 즉흥적인 사람인데 가족들이랑 여행 갈 때만은 철저하게 계획적인 사람이 된다.”     온라인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문장이다. 기자도 그랬다. 혼자서 여행을 갈 때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저 훌쩍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가족과 함께 갈 때는 다르다. 어디에 몇 시에 도착해서 어딜 구경하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교통수단을 통해 어떻게 이동하는지 아주 세세한 계획을 짠다. 심지어는 가려고 한 식당이나 관광시설이 문을 닫으면 갈 ‘예비 계획’까지 준비해놓는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문서로 만들어 모든 가족구성원에게 최소 3주 전에 전달하고 숙지를 요구한다.     물론 아무도 보지 않는다. 결국엔 그 종이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검색하면서 다음 행선지가 어딘지 직접 말해준다. 왜 하필 이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가족 여행의 가이드가 됐다.   지난해 연말에는 부모님이 뉴욕과 워싱턴DC로 일주일 간 여행을 가게 됐다. 비행기, 호텔, 렌터카 등을 모두 예약하고 나서 가는 지역마다 여행계획을 짜드려야 했다.     여행계획을 짜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먼저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시설, 식당, 카페, 쇼핑센터 등을 모두 검색한다. 가야 할 곳 리스트를 만들고 혹시 여행가는 날짜에 문을 닫는지는 않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이후에는 온라인 지도를 켜고 어디에 위치한 지 보면서 효율적인 동선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행계획 짜는 일이 쉬웠다. 인공지능(AI)을 통해 모든 걸 해결했기 때문이다. 퍼플렉시티(Perplexity)라는 AI 검색엔진에 지역을 넣고 여행계획을 짜달라고 하니 내가 하면 4시간 걸릴 일은 4초 만에 해결해줬다. 물론 100% 신뢰할 수는 없어 검증도 해야 하지만 수고가 훨씬 줄어든 것은 확실했다.   개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크게 다가오고 있다. 노동통계국의 추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노동 생산성이 전년 동기 대비 2% 성장했다고 한다. 5개 분기 연속 2% 이상 상승한 것이다. 팬데믹 이전 5년간 평균 성장률이 1.6%였던 것에 비하면 상승세가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생산성 향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AI를 꼽았다.   생산성 향상은 창업 붐과도 관계가 깊다. 센서스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월별 사업체 등록 건수는 15만7678건이었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5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전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일을 적은 인원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창업을 하기 훨씬 더 수월해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이 많다.     신규 사업체들은 AI를 비롯한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고 이를 통해서 적은 인력으로 높은 생산성을 내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소규모 창업이 국내 고용을 이끌고 있으며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뛰어난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이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AI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명확해 지고 있다. 많은 사람은 AI의 발전이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단 생각도 든다.     AI를 통해서 노동생산성이 올라가고 1990년대의 IT붐과 같은 사회 전반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나치게 ‘장밋빛’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4%에 달하는 생산성 향상의 고점이 다가온다는 전망도 있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양가적 감정을 들게 한다. AI가 그려낼 미래도 그렇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친구로서 생산성을 높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긍정적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 또한 작성하는 데 AI를 통한 정보 검색, 번역, 요약, 교정 등의 도움을 받았다. 칼럼을 쓰는 ‘생산성’은 이전보다 확실히 올라갔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여행계획 생산성 향상 가족 여행 관광시설 식당

2025-01-06

[기자의 눈] 대한항공 합병, 소비자 권익은 누가 챙기나

지난해 항공 업계는 인수.합병 관련 이슈로 떠들썩했다. 지난달 11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여정이 4년 만에 마무리됐다. 스피릿항공과 젯블루와의 합병은 경쟁을 저해한다며 당국이 제동을 걸며 무산됐고, 지난해 9월에는 알래스카항공이 하와이안항공 인수를 완료했다.   항공사 합병은 소비자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합병이 이루어지면 서비스의 통합과 운영 효율성 강화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경쟁 감소와 독점 가능성이라는 부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합병으로 세계 항공사 규모 11위에 오르며 노선 확장과 효율성 관리를 목표로 나섰지만, 마일리지 전환에 대해선 소비자 이익면에서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반면 대한항공보다 먼저 인수를 완료한 알래스카항공과 하와이안항공의 합병은 이에 비해 소비자 권익을 더 우선시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우선 알래스카항공과 하와이안항공의 합병은 지역적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주로 국내 태평양과 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시장 구조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 내 경쟁을 강화하고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두 항공사가 경쟁하던 노선의 일부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은 시장 전체에서 비교적 작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 독점적 지위가 형성될 가능성은 작다.   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항공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 구조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 권익을 희생하여 기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알래스카항공과 하와이안항공의 합병은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편의성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두 항공사는 각각 알래스카 지역과 하와이 지역에서 독특한 노선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합병 이후 이러한 노선들이 통합되면 소비자에게 더 나은 연결성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노선 조정을 통해 서비스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중복 노선의 폐지로 인해 일부 지역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수요가 적은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접근성이 줄어들 수 있다. 게다가 합병 이후 서비스 개선의 동기가 약화될 경우, 소비자는 고가의 항공권을 구매하면서도 기존의 서비스 수준조차 유지되지 못할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알래스카항공과 하와이안항공의 합병은 소비자에게 더 나은 마일리지 프로그램 통합과 혜택 확장을 약속했다. 두 항공사의 고객 충성도 프로그램이 합쳐지면 소비자는 더 다양한 옵션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지역적 항공사로서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합병 이후에도 고유 브랜드를 별도로 운영하기로 했다.     알래스카항공은 하와이안항공의 마일리지 전환 비율을 1:1로 설정했다. 일반적으로 1마일당 1.3센트로 평가되는 알래스카항공이 1마일당 가치가 1센트로 취급되는 하와이안항공의 마일리지를 소비자 측 손해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마일리지 프로그램 통합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마일리지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기존 고객이 보유한 마일리지를 사용하는 데 있어 제약이 늘어날 수 있다.   대한항공 측은 추후 자세한 마일리지 통합 규정을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전문가들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통합 비율을 1:0.7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상 마일리지는 항공사에 있어서 부채와 같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들의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소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이유는 독점 구조 강화와 소비자 선택권 축소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규제 기관은 합병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조치를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한국 1위 국적기라는 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대한항공은 항공권 가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 합병 이후에도 지방 공항에서의 노선 유지와 서비스 품질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다분한 논란이 예상되는 마일리지 프로그램 통합 과정에서는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대한항공 소비자 소비자 권익 항공사 합병 반면 대한항공

2025-01-02

[기자의 눈] K팝의 성공과 착취 소송

지난 6일 JYP 엔터테인먼트의 미국 법인이 소송에 휘말렸다. JYP 소속 걸그룹 ‘비춰(VCHA)’의 미국인 멤버인 키이라 그레이스 매더(17), 예명 ‘케이지(KG Crown)’가 아동 노동 착취, 방임, 학대, 그리고 불공정 계약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케이지는 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특정 스태프들에게 학대와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후 JYP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종료하고 비춰를 떠나기로 결정했으며 어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비춰는 JYP와 유니버설뮤직 그룹 산하 레이블 리퍼블릭레코드가 손잡고 진행한 글로벌 프로젝트 ‘A2K’로 결성된 한미 합작 걸그룹으로 올해 1월 데뷔했다.     케이지는 “저는 한 멤버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게 만든 근무 환경과 생활 환경을 지지하지 않는다. 섭식 장애를 유발하고 멤버들을 자해하게 만드는 환경 역시 지지하지 않는다”며 “지난 5월에 팀을 탈퇴하겠다고 결정했으며, 지금은 계약이 해지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강도 높은 업무와 사생활에 대한 극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급여는 거의 받지 못한 채 막대한 부채를 쌓아왔다”며 “제가 받은 대우에 대해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으나, 이는 케이팝 산업에 깊이 자리 잡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송의 세부 내용은 아직 모두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K팝 업계의 본질과 그 안에 깔린 구조적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되짚게 한다.   아이돌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이들은 대중의 사랑과 동경을 받으며,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성공을 위해서는 탁월한 외모와 재능뿐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체계적이고 엄격한 훈련으로 유명하다. 이는 K팝 아이돌이 단순한 연예인을 넘어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한 중요한 기반이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과 높은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그러나 타문화에서 자란 이들에게는 이 체계가 때로는 낯설고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엄격한 기준은 때로는 노력에 비해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이는 더 큰 좌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과도한 업무 부담과 강압적인 훈련은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뉴진스 멤버 하니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과 같은 사례는 이러한 문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K팝 산업계 전반이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쟁 문화는 아이돌 산업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데뷔를 위해서는 높은 기준과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하며, 데뷔 후에도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글로벌 오디션을 통해 합류한 이들에게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가 추가적인 장벽이 될 수 있다. 또 타문화에서 자란 연습생들에게도 한국식 시스템은 높은 벽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아이돌은 단순히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국가 이미지를 대표하며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개인의 권리와 복지는 종종 간과된다. 과도한 일정, 불공정 계약, 그리고 건강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K팝 아이돌 산업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존재한다. 이들의 성공 뒤에는 철저한 시스템과 개인의 노력이 결합돼 있다. 모두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 체계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들에게는 또 다른 도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 K팝의 성공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스타 양성 시스템이 인권을 차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성공 착취 아이돌 시스템 아이돌 산업 k팝 아이돌

2024-12-10

[기자의 눈] UFO와 부정선거

대표적 음모론으로 치부되는 미확인비행물체(UFO)만을 약 1년 반 취재한 적이 있다. UFO 뿐만 아니라 외계생명체를 봤다는 목격자, 더 나아가 외계인들에게 납치돼 정자를 채취당했다는 사례까지 들어봤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들을 털어놓은 이들은 정신 이상자들이 아니라 성공한 기업가, 작가들이었다.   취재중 에비 로엡 하버드대 천문학과 교수를 만났는데 그는 학교 역사상 최장 기간 학과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2021년 전세계 곳곳에 천체망원경을 설치해 UFO를 관찰하는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17년 태양계 바깥에서 온 성간 천체가 처음 포착됐는데 로엡 교수는 외계 고등 생명체가 보낸 인공물(人工物)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UFO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90년대 존 맥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 학과장은 외계인에 납치됐다고 주장하는 200여 명에 대해 직접 최면 요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에게서 정신적 문제를 찾기 어려우며 이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화 주인공인 영국인 장교 로렌스의 전기(傳記)를 써 1977년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취재를 위해 그의 연구를 찾아 검토하고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에서 계속 진행되어온 납치 사례들을 확인했다.   UFO에 관한 취재를 종합해 내린 결론은 ‘믿느냐’, ‘안 믿느냐’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들은 서로를 답답하게 생각한다.   음모론에서 비롯되는 서로간의 불신은 주제가 정치일 경우 훨씬 더 위험하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12·3 계엄사태가 그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계엄 당일 계엄군이 선관위에 진입한 이유가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정치권에서의 음모론은 진영 간 갈등에서 지켜내야 할 목숨과도 같은 신념처럼 보인다. 진보측에서 제기한 음모론들은 양 진영간 물러설 수 없는 충돌들을 야기했다. 5·18 발포명령자는 무조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고,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리며, 천안함은 북한에 폭침된 것이 아니라 잠수함과 충돌한 것이라는 말들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보수 진영에서도 수세에 몰렸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음모론이 크게 확산됐다. 그중 하나가 2020년 4·15 총선이 조작됐다는 것이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간 유권자의 성향이 너무 달랐다는 것이 의혹의 시발점이었다. 통계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누군가가 사전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음모론은 ‘권위 있는’ 학자들을 통해 확산된다. 세계적 전문가라는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한국의 어떤 교수는 이런 결과가 나올 확률이 ‘동전 1000개를 던져 모두 앞면만 나올 확률’이라고 말했다.     일반인은 알 수 없는 투표 전산 프로그램 코드를 전문가가 2진법으로 풀었더니 ‘Follow the Party(당을 따르라)’가 나왔다는 주장도 나왔다. 물론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그 이후에도 중국공산당 배후의 해커가 ‘지문을 남겼다’는 또 다른 음모론까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기자는 ‘국제조사단’의 부정선거 보고서 번역 의뢰를 받았다. 수백 쪽의 보고서를 읽어보니 언론 및 유튜브에 나온 내용 짜깁기에 불과했다. 쏠쏠한 용돈벌이가 될 수 있었지만 하지 않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같은 해 치러진 동시지방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부정선거를 주장한 이들은 ‘우리가 열심히 감시하고 막아내서 겨우 이겼다’며 여전히 본투표와 사전투표 간의 격차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전투표를 하면 안 된다는 운동을 벌였고 당연히 보수 성향 유권자가 본투표장에 더 많이 모였다. 잠잠해지나 했던 부정선거론은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또 다시 시끄러워졌다.   이기면 부정선거가 아니고 지면 부정선거라는 주장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대선 전 실시된 폴리티코와 모닝컨설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의 87%가 부정선거로 인해 결과가 바뀔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가 승리한 후 진행된 조사의 경우 부정 선거에 대한 확신은 24%에 불과했다.   정치 문제에서의 음모론은 UFO와는 달리 상대를 과격하게 적대시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국 언론의 댓글창에서는 같은 성향 간에도 과격한 말이 오간다. 신념을 넘어 일종의 극단주의 종교 차원의 문제로까지 비춰진다. 갈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나는 믿는데 너는 왜 안 믿느냐’다. 종교 포교 활동조차도 줄어든 이 시대에 믿으라 강요하고 교리(敎理)가 잘못됐다고 반박하면 죽자고 달려든다.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진실은 소설보다 더 기묘하다. 왜냐하면 소설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그려야 하지만, 진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많다. 대선도, 계엄 사태도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경제 등 더 중요한 문제에 에너지를 쏟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김영남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부정선거 ufo 부정선거 의혹 대표적 음모론 조작 가능성

2024-12-09

[기자의 눈] 비상계엄이 낳은 ‘코리아 패싱’

지난 3일(한국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몇 시간 후 해제가 되긴 했지만 큰 혼란을 불러왔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446.5원까지 오르며 15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4일에는 민주노총이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선언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비상계엄 사태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가 약화돼 주요 현안에서 ‘코리아 패싱’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경제적 손실을 넘어 한국의 국가적 위상과 전략적 중요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우선 국제적 파트너십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영향력 감소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은 점차 강화됐다.   특히 지난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함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 고도화된 대중 전략과 인태전략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국 입장에서는 3국의 안보 협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미국의 외교 전략에 한국이 필요한 존재임을 트럼프 2기 정부에 각인시켜야 하고, 이를 한미동맹의 레버리지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비상계엄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가 흔들리면 한미일 협력 체제 내에서 한국이 힘을 잃고 주변국들에 주도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은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안보 협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독자 핵무장 기회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이 드러나고, 비상계엄에 대한 사전 공유조차 없었던 만큼 앞으로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지금과 같은 신뢰도를 유지할지 의문이다.     불규칙 바운드를 보이는  한국 지도자에게 국제사회가 핵버튼을 용인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개발담당 부차관보 등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들이 한국의 독자 핵무장에 무게를 실어온 상황에서 비상계엄은 오랜 시간 한국의 독자 핵무장 노력을 물거품 시켰다.     아울러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부 미국 언론은 한국의 혼란 상황을 북한의 침략 가능성과 연관지어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이 여전히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속에 있음을 강하게 인식시켰고, 이는 외국 자본의 ‘코리아 패싱’ 가능성까지 키웠다.     가뜩이나 한국의 외국인 투자 유치는 시들시들한 상태다. 지난 9월 유러피언 하우스 암브로세티가 발표한 ‘글로벌 외국인 투자 매력도 지수’에서 한국은 9위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세 계단 하락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외국인 직접투자는 신고 기준 153억4000만 달러에 머물러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 동기 대비 10.3%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약점이 부각돼 외국인 투자가 감소한다면 한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향후 한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다행히 비상계엄 상황은 단기간에 해제됐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의 ‘코리아 패싱’ 가능성은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건재하고, 국가 체제도 안정적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 또한 지정학적 불안감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안보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도 보여줘야 한다.     한국이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재확인시키는 일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그래야만 ‘코리아 패싱’ 상황을 막을 수 있다.   김경준 / 사회부기자의 눈 비상계엄 코리아 코리아 패싱 비상계엄 사태 이번 비상계엄

2024-12-08

[기자의 눈] 비상계엄, 그리고 회복 탄력성

12월 3일 오전 6시. 습관처럼 잠에서 깨자마자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뉴스를 확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계엄사령부 포고령 전문’이라는 기사 제목이었다. 갑자기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기자는 1980년대에 태어났기에 비상계엄은 체험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접한 탓인지 어떤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얼마 전 봤던 영화 ‘서울의 봄’이 바로 떠올랐다. 그런데 무언가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느껴졌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바로 연락해 물었다.     “지금 이거 실제상황 맞는 거지?” 한국은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대부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고 그만큼 충격파도 컸다. 정치와 사회 분야는 물론이고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장 원·달러 환율이 폭등해 한때 1달러당 144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한국기업의 주식은 폭락했다. 한국의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한국 기업 주식의 투매에 나선 투자자가 많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가의 가구를 미국에서 직접 주문해 5만원가량을 절약해 좋아했다는 한 누리꾼은 그런데 하필 비상계엄 발표 시점에 결제하는 바람에 환율 폭등으로 오히려 10만원 이상 손해를 봤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전하기도 했다.     다행히 충격파는 일시적이었다. 폭락했던 주가와 폭등한 환율은 몇 시간 만에 안정세를 찾았다. 다만 미시적으로 큰 피해가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사태로 연말 분위기는 사라지고 자영업자들은 더 힘들어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증시나 부동산 같은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충격이 생각만큼 크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JP모건체이스의 한 애널리스트는 비상계엄 사태로 한국의 금융주들이 저평가된 지금이 매수 적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회복 탄력성이라는 단어다. 회복 탄력성은 개인이 스트레스, 역경, 트라우마 등을 겪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원래 상태로 회복하거나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역경이 없는 삶이란 없기에, 개인의 정신건강에 중요한 것이 회복 탄력성이라는 이야기가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여당은 물론 우방인 미국과도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을 6시간 만에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제한 것은 세계인들에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무력충돌과 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경제 또한 어느 정도의 후유증은 남아있지만, 충격을 최소화하고 회복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짧지만 강렬했던 충격을 제대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런 어려움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한국의 회복 탄력성이 강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다양한 사건을 겪으면서 학습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쟁을, 독재를, 계엄령을, 민주화운동을, 외환위기를, 대통령 탄핵을 모두 겪어본 국민이 있는 나라다. 어려움이 있을 때 좌절하지 않고 힘을 모아 극복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벌어졌던 일들 가운데 아직 수습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의미다. 국가 이미지 손상과 같은 손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잘 극복해 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 있는 기자가 바라보는 한국은 회복 탄력성이 강한 나라기 때문이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비상계엄 탄력성 회복 탄력성 비상계엄 사태 비상계엄 선포

2024-12-05

[기자의 눈] ‘짠 내’ 추수감사절 메뉴 경쟁 의미

칠면조 구이, 크랜베리 소스, 매시드포테이토, 펌킨 파이….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는 전통적인 음식들이다. 추수감사절은 가족과 이웃이 모여 풍성한 저녁과 함께 감사를 나누는 날이다. 그러나 고물가로 많은 사람이 연휴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명절 스트레스’를 겪었다. 추수감사절 저녁을 준비하며 어려운 경제 사정의 현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올해 추수감사절 저녁 메뉴는 창의성과 절약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키워드였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레베카 초밧 셰프의 틱톡 영상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27일 업로드된 1분 남짓한 영상을 통해 단돈 20달러로 추수감사절 저녁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초밧 셰프가 재료를 구입한 곳은 저가 잡화점 체인인 달러트리. 그는 “달러트리에서 구매한 저렴한 재료로 최고의 추수감사절 저녁을 만드는 방법”이라며 요리법을 공개했다. 초밧 셰프가 소개한 추수감사절 저녁 요리는 칠면조 한 마리 대신 캔에 담긴 칠면조 고기, 버터 대신 마가린, 가루로 된 인스턴트 매시드포테이토 등을 사용해 만든 디저트 포함 세 가지 코스였다. 그가 구입한 총 15개 재료 대부분의 가격이 1.25달러 안팎이었고, 가장 비싼 것도 2.50달러를 넘지 않았다. 이 동영상을 본 많은 틱톡 유저들은 팍팍한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는 댓글 등으로 극찬했다.   이 영상에는 단순한 절약 팁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초밧의 요리법은 경제적으로 힘든 이들에게 소중한 해결책을 제공했고, 이를 통해 누구나 따뜻한 추수감사절을 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추수감사절 저녁 준비 비용이 지난 몇 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미국농민연맹(AFBF)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수감사절에 열 명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칠면조 요리 준비 비용은 평균 58.08달러였다. 이는 지난해보다 5%가 감소한 금액이다.     또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률이 이를 상쇄하면서, 실질적인 구매력은 오히려 개선됐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가 모든 가정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 간 식료품 가격의 차이와 기본적인 주거 및 육아 비용 상승이 여전히 많은 가정의 주머니 사정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칠면조 가격은 전년 대비 하락세를 보였지만 가공식품과 빵, 칠면조 요리 속 재료 같은 제품의 가격은 여전히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유통 및 소매업체들도 공격적인 추수감사절 메뉴 할인 정책을 펼쳤다. 타겟은 20달러로 네 명을 위한 추수감사절 식사를 제공했고, 알디는 열 명을 위한 47달러 디너 세트를 판매했다. 일 인당 4~5달러 수준인 셈이다. 월마트는 ‘인플레이션 없는 추수감사절’이라는 슬로건 아래 여덟 명분의 음식을 56달러에 제공했다. 대형 업체들이 추수감사절 ‘짠 내’ 메뉴 경쟁을 벌인 것이다.       ‘짠 내’ 메뉴 경쟁과 초밧의 영상에는 단순한 비용 절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추수감사절은 음식 자체보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다. 추수감사절 저녁의 진정한 의미는 준비한 음식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음식의 비용이 많든 적든, 시간이 오래 걸리든 간단하든,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소박한 음식이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나누면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초밧 셰프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의 창의성과 공동체 정신만 있다면 경제적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추수감사절이었다.  우훈식 / 뉴미디어국 기자기자의 눈 추수감사절 메뉴 추수감사절 메뉴 추수감사절 저녁 추수감사절 식탁

2024-12-02

[기자의 눈] 진화하는 K팝, 경계는 어디까지?

K팝은 이제 글로벌 음악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태생적 정의를 벗어나면서, 그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다. 이제 ‘어디까지를 K팝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됐다.   K팝은 한국 가수가 한국어로 노래하는 데서 시작됐다. 이후 외국어 가사가 섞이고, 외국인 멤버들이 합류하며 현지 팬과 문화를 반영한 다양한 스타일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영어 곡을 부르는 외국인 멤버들로 구성된 그룹도 등장했다. 이제 K팝은 특정 국가나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대중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한국의 대형 음악 기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와 HYBE의 행보가 주목된다. JYP는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 ‘에이투케이(A2K)’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 국적 멤버들로만 구성된 ‘비춰(VCHA)’를 데뷔시키며 K팝의 영역을 확장했다. 또 HYBE는 넷플릭스 오디션 프로그램 ‘드림아카데미’를 통해 ‘캣츠아이(KATS EYE)’를 탄생시켰고, 다양한 배경의 멤버들이 글로벌 차트를 점령하며 K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이러한 다국적 그룹의 등장은 K팝이 ‘한국성’에 갇히지 않고, 글로벌 문화와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형 아이돌 모델’이 대세다. 지금 K팝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모델을 바탕으로 팬과 아티스트 간의 관계 설정, 독특한 제작 시스템 마련, 현지화된 아이돌들이 그 중심에 있다.   이 모델이 중요한 이유는 팬들이 직접 아티스트와 소통하고 그들의 성장 과정을 함께한다는 점이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HYBE의 팬 플랫폼 ‘위버스(Weverse)’다. 위버스를 통해 팬들은 아티스트의 일상 콘텐츠, 라이브 방송, 콘서트 영상을 즐기며, 아티스트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지난해 7월 기준, 위버스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1000만 명을 넘었고, 팬들이 결제한 금액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K팝 팬들은 단순히 음악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아티스트의 일상과 커리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팬과 아티스트의 밀접한 관계는 다른 음악 장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K팝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한국형 아이돌 모델이 다른 지역과 장르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남미 출신의 멤버들로 구성된 라틴 아이돌 그룹이 레게톤이나 라틴풍 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거나, 남아프리카의 아마피아노, 아프로비츠와 같은 장르가 결합된 새로운 아이돌 모델이 가능할까? 한국형 모델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다양한 문화와 음악적 전통을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JYP의 박진영과 HYBE의 방시혁이 있다. 방시혁 의장은 “K팝은 음악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라고 정의한다. 이는 단순한 음악 스타일을 넘어 팬과 아티스트 간의 관계, 소비 행태, 제작 시스템까지 결합한 복합 문화라는 것이다. 박진영은 K팝의 정체성을 ‘소비 방식과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에서 찾으며, K팝 팬들은 방송을 보고 실시간 콘텐츠를 통해 아티스트와 관계를 이어가는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 K팝은 전 세계의 문화와 융합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K팝은 ‘한국형 아이돌’이라는 성공적인 모델을 통해 성장해왔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음악적, 문화적 요소와 결합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갈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 한국이라는 틀이 사라지고 K팝 자체가 글로벌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K팝의 다음 단계일 것이다.   K팝은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그 의미와 정체성 역시 변화 중이다. 어디까지가 K팝일지, 그 경계를 더 확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진화 경계 한국형 아이돌 한국형 모델 글로벌 음악산업

2024-11-12

[기자의 눈] 우리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대통령에 당선돼 오는 1월 백악관으로 복귀한다. 재선에 실패하고 4년 후 다시 선거에 나와 당선된 것은 1892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대선을 취재하며 여론조사의 한계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동안 미국 대선은 물론, 한국 대선 및 총선 결과까지 정확히 맞혀 ‘족집게’로 불린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마저 선거 당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의 당선을 전망했다.     미국 대선은 각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수로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로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워낙 주별 지지 성향이 뚜렷하다 보니 굳이 많은 예산을 들여 모든 주에서 대통령 선거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도 많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로 불리는 7개 주 정도의 결과로 당락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번 대선도 트럼프가 노스캐롤라이나와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기면서 ‘당선 확실’ 분위기가 됐다.     이제 선거는 끝났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게 된다. 선거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기쁨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소셜미디어뿐만이 아니라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에서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Not My President)’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점이다. 2021년 1월 6일의 의사당 난입 사태를 가장 비판했던 사람들이 이들 아닌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워싱턴포스트(WP)에는 6일 보수 성향 평론가 마크 티센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 제목은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고 여러분의 대통령이다(Trump is my president - and yours)’였다.  그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파시스트’, ‘독재자’, ‘복수에 한이 맺힌 사람’ 등으로 묘사하며 그를 민주주의의 적(敵)으로 본다고 했다. 그런데도 과반 이상의 미국인이 그를 다시 선택했으며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는 흥미로운 분석도 내놨다. 그는 매년 대통령이 잘한 일 10가지와 못한 일 10가지를 정리한 칼럼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잘못한 일 10가지는 그가 한 말들이고, 잘한 10가지는 그의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음소거 버튼만 틀어놓는다면 트럼프 1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대통령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티센은 “트럼프가 잘하면 칭찬할 것이고, 잘못하면  비판할 것”이라며 “트럼프는 우리의 대통령이며,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야 한다”고 끝을 맺었다.       미주중앙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한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지지도 여론조사를 했다. 약 1600명이 지지 후보와 이유를 답했다. 응답자의 상당수는 “너무 양분화돼 있어 절충안이 없어 보인다”, “그나마 차악을 선택했다”, “새로운 젊은 후보가 없어 안타깝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모든 선거가 그렇겠지만 본인이 지지하는 쪽은 선(善)으로, 반대편은 악(惡)으로 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결과는 나왔다. 선거 불복이니,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주장은 시간과 감정 낭비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미국에 살아본 사람들은 동감하겠지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내 삶도 확 바뀔 정도로 미국이 취약한 국가는 아니지 않은가?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로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음에도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를 공식 지지한 리즈 체니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 관심을 받고 있다. 체니 전 의원은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했고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며 “모든 미국인은 결과가 좋든 싫든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공화당 의원이었던 그는,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를 지킬 의무가 있다”며 글을 맺었다.   김영남 / 뉴미디어국 기자기자의 눈 대통령 대통령 선거 도널드 트럼프 지지도 여론조사

2024-11-11

[기자의 눈] 트럼프 당선인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초접전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는 소위 ‘스윙 스테이트’로 불리는 지역에서의 압승은 물론 민주당의 아성인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선거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인 유권자 가운데서도 트럼프를 지지자가 의외로 많아 다소 뜻 밖이었다. 한인, 특히 남가주 한인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지지 한인들은 경제 활성화와 사회적 변화를 기대했다. 우선 바이든 정부 4년 동안 실생활 면에서 나아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높은 물가 상승률과 그로 인한 생활비 부담 증가로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서명한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인 미국구제계획법이 원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경기부양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과도한 자금이 투입되면서 물가 상승을 촉발했다. 특히 젊은층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충격이 컸다. 생필품과 식료품 가격, 주거비 등이 오르면서 젊은층 10명 중 2명은 경제적 부담을 느껴 독립을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물가 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또 하나는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과도한 집착이다. 이런 분위기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적 시각에 동조하는 한인 유권자도 많았다고 생각된다.   최근 미국 사회는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을 넘어 일종의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정도다. 대표적인 예가 ‘캔슬 문화’의 확산이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배척하는 것으로, 일부 한인들은 이러한 문화가 정치적 올바름을 강제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따르고 안 따르고의 문제는 개인의 자유이다. 그런데 캔슬 문화는 정치적 올바름이 무조건 맞는다는 식으로 접근해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요와 규범화에 반대하는 정치인이다. 이로 인해 그의 당선을 바라는 한인 유권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경제적 기대와 함께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한미 관계다. 과거 트럼프 정부는 한국에 엄청난 규모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분담금 증액 요구는 새로운 트럼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분담금 논란이 자칫 한미동맹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지난 4일(한국시각)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제12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 서명했다. 이번 협정은 한국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례적으로 기존 협정의 만료를 약 2년이나 남기고 체결된 것이다. 또 양국이 지난 4월 공식 협의를 시작해 무려 5개월 만에 협의를 끝냈다.     이러한 속전속결의 배경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에 대비해 방위비 분담 협정이 한미 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한 한국 정부의 전략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번 선거 기간 중에도 방위비 분담금으로 한국에 연간 100억 달러를 부담시키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는 이번 협정 액수 대비 9배 가까운 금액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의 재선은 한미 방위비 협정의 재협상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신규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체결됐어도 이번 선거 결과가 다소 우려스럽다. 앞으로의 한미동맹도 굳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트럼프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 민주당 지지자들 대통령 선거

2024-11-10

[기자의 눈] 문자 콘텐츠의 가치

인공지능(AI)을 훈련하는 일을 했던 적이 있다. AI가 사용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을 보고 이를 수정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인공지능은 더 정교해지고 인간의 언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AI가 사실관계와 다른 답변을 내놓으면 일일이 이를 확인해서 수정했었다. 그러다 보면 깨닫게 된다. 결국 AI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국 AI를 훈련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는 사람이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의 질이 좋아질수록 AI는 더 똑똑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거대기술기업(빅테크)들은 AI를 훈련할 양질의 콘텐츠를 찾아 헤매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이 AI업계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오픈AI다. 오픈AI는 뉴스를 생산하는 미디어 기업으로부터 콘텐츠를 무단으로 사용해 AI를 훈련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그래서 여러 언론사와 발 빠르게 콘텐츠 사용 계약을 맺는 중이다.   작년 12월,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드를 소유한 악셀 스프링어와 콘텐츠 사용료로 매년 수천만 달러를 지불하는 계약을 확정했다. 올해 5월에는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포스트 등을 소유한 뉴스 코퍼레이션과 5년간 2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6월에는 대표적인 주간지 타임과 콘텐츠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구글도 이에 질세라 뉴욕타임스 등과 콘텐츠 제휴 계약을 맺으며 맞서고 있다.     언론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들 또한 AI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은 오픈AI는 물론 구글 등 빅테크와 수백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를 AI 학습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레딧 주가는 폭등했고 레딧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다. 시카고 트리뷴과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 등을 포함한 일간지 8곳이 자사 뉴스를 무단으로 사용해 AI를 학습시켰다고 오픈AI에 소송을 제기했다. 출판계에서도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왕좌의 게임 원작자인 조지 R R 마틴 등 작가들도 오픈AI를 고소했다.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다 집어삼킬 기세인 AI에 제동을 거는 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빅테크가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받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콘텐츠의 양은 많지만, 가치 있는 양질의 콘텐츠는 적기 때문이다. AI는 콘텐츠의 질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현재로써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로 학습하고 자라난다. 콘텐츠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이 문자로 되어 있는 콘텐츠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이 글을 읽기보다는 영상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영상 콘텐츠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이는 너무 당연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양질의 콘텐츠는 문자를 통해서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혁신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AI가 이를 필요로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아직 문자 콘텐츠의 힘은 건재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다 보면 높은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는 믿음도 굳건하다. 그런 면에서 오픈AI와 협상을 하다 콘텐츠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한다며 제휴를 거부한 CNN의 사례는 콘텐츠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매체에 따르면 CNN의 경영진은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거절하면서 ‘단어 하나에 1센트 미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오픈AI와는 거래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콘텐츠의 힘과 가치를 믿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콘텐츠 문자 콘텐츠 사용료 문자 콘텐츠 콘텐츠 제휴

2024-11-05

[기자의 눈] 서머타임 언제나 없어질까?

 지난 3일 미국 대부분 지역의 주민들은 한 시간을 공짜로 얻었다. 지난 3월 시작된 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Daylight Saving Time)이 이날 종료되면서다.   서머타임은 낮이 긴 여름철에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에너지도 절약하기 위한 제도다. 처음 시행된 배경은 에너지 절약과 관련이 깊다. 서머타임의 아이디어는 1784년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처음 시행된 것은 1916년 독일에서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전쟁 자원을 아끼기 위해 낮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서머타임을 도입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에너지 절약과 자원 보존을 이유로 서머타임을 도입하게 됐다.   시행 초기엔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대에는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생체 리듬을 깨트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점이다. 서머타임 시행 시기가 되면 수면 장애, 피로 누적, 주의력 저하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실제로 서머타임 시작 직후에는 교통사고와 산업 재해의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자료도 있다. 인위적인 시간 변화가 인간의 생체 시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서머타임 시행으로 오히려 에너지 소비량 증가 현상도 나타난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에어컨이나 전등 사용이 늘어나며, 특히 전자기기의 사용 시간 증가로 에너지 절약 효과는 되레 감소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머타임 폐지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19년 서머타임의 유지 여부를 각 국가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허용했다. 미국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2년에는 연방 상원에서 폐지 법안이 통과됐으나 하원에서의 반대로 좌초되기도 됐다. 이는 서머타임이 더는 현대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은 제도로 오히려 불편만 초래한다는 불만이 높아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가주에서도 서머타임 폐지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 2018년 선거에서 서머타임 폐지 주민발의안이 통과됐으나, 가주 의회의 회기가 끝나는 바람에 무산된 바 있다. 2022년에는 최석호 전 가주 하원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했지만 위원회 반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올해 초에도 트리 타 가주 하원의원과 로저 니엘로 가주 상원의원이 서머타임 폐지 법안을 추진했으나 위원회에 넘겨진 후 더는 진전되지 못했다.   서머타임 폐지 노력의 무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대중의 인식 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다. 서머타임이 효율적이라며 유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이다. 또 정책 변화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폐지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시행에 필요한 예산과 시간 조정 문제, 관련 인프라 변경 등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불편에 대한 우려도 폐지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서머타임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서머타임이 에너지 절약에 기여했던 시대는 산업화 초기였다. 하지만 현재는 에너지 절약 효과는 기대 이하이고, 오히려 건강 문제와 각종 사고 유발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현대인은 업무와 생활 패턴이 과거보다 다양해졌고, 글로벌화로 시간의 통일성도 중요해졌다. 매년 두 차례 인위적으로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세계 각국과 연결된 오늘날의 경제 활동에 오히려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서머타임은 이제 효율성보다는 불편과 위험을 유발하는 제도로 전락했다. 경제적 효율성과 주민의 건강을 고려한다면 시행을 중단하는 것이 맞다. 부디 내년부터는 다시 시계 시침을 바꾸지 않아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훈식 / 뉴미디어국 기자기자의 눈 서머타임 서머타임 시행 서머타임 시작 최근 서머타임

2024-11-03

[기자의 눈] ‘LA 정착, 신고합니다’

기자는 넉 달 전 LA로 왔다. 미국 동부, 하와이, 서울 등에서 직장 생활을 했고 서부는 처음이다. 하와이의 ‘알로하’는 아니더라도 행정 도시 같이 차가운 워싱턴 D.C., 매일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았던 서울보다는 알로하에 가까울 줄 알았다.   차를 타고 5일 동안 2600마일을 달려 LA에 도착했다. 처음 놀란 건 기름값. 동부보다는 물론이고 횡단 중 거친 시골 중남부 지역과 비교하면 갤런당 2달러는 비쌌다. 다음 놀란 건 이사를 마치고 아파트 밖에서 흡연을 하다 듣게 된 “담배는 나쁜 거야, 멍청아”라는 동네 중학생의 도발이었다.     밤이 찾아왔다. 길거리엔 노숙자들이 걸어 다니며 ‘담배 하나만’을  부탁한다. 그리곤 알았다. 내가 인터넷으로 알아본 아파트가 악명(?) 높은 맥아더 공원 옆이라는 걸.   밤에는 ‘쾅’ 소리, 소방차 소리로 여러 번 잠에서 깼다. 총격 살인사건이라도 난 줄 알았더니 노숙자들이 드럼통에 불을 피웠다 불이 난 거라더라. 다음날 화재 현장 주변에 주차했던 차 중에는 인도 쪽 타이어가 사라진 차도 많았다.     우연히 노숙자들을 취재하게 됐다. 건장한 선배 기자 뒤에 숨다시피 하며 맥아더 공원과 스키드로를 걸었다. 시비라도 걸어올까 봐 사진 촬영도 어려웠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같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놓고 마약을 하는 사람들, 하반신을 드러내고도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들, 인간의 뼈 구조를 보여주는 듯 깡마른 아이들, 하수구에서 낚시하듯 막대기를 집어넣고 뭐라도 먹을 걸 찾으려는 아저씨….   사고를 낼 뻔한 적도 있다. 저녁을 사러 식당이 있는 작은 몰에 갔을 때다. 후방 주차를 하려고 천천히 후진하는데 검은 물체가 살짝 사이드미러에 보여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 문을 열고 확인해보니 마약에 취한 사람이 차 뒤로 오고 있었다. 일찍 발견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일본 전후(戰後) 문화를 집중 조명한 유명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주여, 인간은 이리 슬픈데, 바다는 너무 푸르릅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취재차 갔던 베벌리힐스와 할리우드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두 개의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듯하다. 이런 느낌은 기자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창문으로 보이는 건물 뒤에는 노숙자 텐트촌이 있고 그곳에선 밤이면 드럼통에 불을 피운다. 반면 아파트 5층의 루프탑 수영장에선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런 상황은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잘못된 사회 시스템 탓일까? 이의 판단에는 LA 생활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노숙자들에게도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마약 등에 빠져 정부나 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외면하는 이들이다.     유명 록밴드인 이글스의 히트곡 ‘호텔 캘리포니아’ 가사 중에 ‘당신은 언제든 체크아웃할 수 있지만, 절대 떠날 수는 없을 것(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이라는 부분이 있다. 캘리포니아의 화려한 불빛 이면에는 퇴폐적 어둠도 존재한다는 것을 풍자한 것이 아닐까.   캘리포니아는 미국 최대 주고,  LA는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전국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곳도 캘리포니아주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고, 아직 내가 모르는 매력이 존재한다는 방증일 수 있다.     나의 LA 살기가 언제까지가 될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을 조금 더 배워보려고 한다.     이번의 첫 칼럼으로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앞으로 배우고 알아가는 자세로 LA의 다양한 모습을 취재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LA 초년생, LA 생활 시작을 신고합니다!” 김영남 / 뉴미디어국 기자기자의 눈 정착 신고 노숙자 텐트촌 아파트 창문 호텔 캘리포니아

2024-10-14

[기자의 눈] 누구를 위한 긴 전쟁인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전쟁이 어느덧 1년을 맞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오히려 레바논, 이란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등 확전 양상을 보인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오래 싸우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휴전을 촉구하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전쟁을 끝낼 의사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위해 계속 전쟁을 하려는 것인지 명분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생존을 이유로 무력 사용을 정당화했다. 지난 1948년 건국 이후,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등 주변 이슬람 국가와 반이스라엘 무장 세력들로부터 지속해서 공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하마스였다.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 약 5000발의 로켓을 기습적으로 발사하고, 이스라엘 국경을 침입해 1200여명을 살해, 250여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은 자위권의 행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 점점 확대되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에 국제 사회는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특히, 군사 작전의 목표가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반이스라엘 무장 세력에 국한되지 않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민간 거주지역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6월 19일 이스라엘 공격 분석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과 무장세력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9일부터 12월 2일까지 가자지구의 학교, 난민 캠프, 건물 등에 GBU-31(2000파운드), GBU-32(1000파운드) 등 고성능 폭탄을 투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민간인이 떠안고 있다. 지난 6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국제이주기구 등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사상자 수는 사망자 4만여 명을 포함, 14만 명에 이른다. 난민 숫자도 약 190만 명으로 집계됐다. 또 레바논의 사상자 숫자도 지난 5일 기준 1만1000명을 넘어섰으며, 난민 규모도 54만 명 이상으로 기록됐다. 아랍계 언론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이스라엘 역시 98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전력과 물 부족으로 200만명 이상의 주민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등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전쟁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전쟁을 이끄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전만 해도 지지율이 바닥이었다. 지난해 사법부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행정부의 힘을 강화하려다 국민의 저항에 부딪혔다.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후퇴시킨다는 이유였다. 약 50만 명이 반대 시위에 참여하면서 그의 재임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이 와중에 전쟁이 발발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신속히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 결과, 그의 지지율은 반등했다. 지난해 초 10%대에 머물던 그의 지지율이 지난달 29일 기준 38%까지 올랐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동 정세는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76년 전으로 후퇴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방어적 전쟁’의 논리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동안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이 더는 국제사회가 묵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명분이 전쟁의 동력이라면, 이 명분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명확한 답을 요구한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전쟁의 명분에 대해 근본적인 재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전쟁 이스라엘 기습공격 가자지구 전쟁 반이스라엘 무장

2024-10-07

[기자의 눈] 한인타운의 미래에 대한 고민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평일 점심.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갔다. 주문한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한입 먹으려 하는데 옆 테이블에 한 5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보였다. 주문한 음식이 없는 텅 빈 테이블에 앉아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해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남성은 어디선가 주사기를 꺼내더니 본인 팔에 꽂았다. 누가 봐도 의학적 필요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가 느껴졌다. 갑자기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다행히 이를 눈치챈 직원이 바로 남성에게로 가 매장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순순히 말에 따랐다.     갑자기 식사를 마치고 걸어갈 길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홈리스가 있는 길도 별 두려움 없이 걸어 다녔지만 LA한인타운에서 걷는 행위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취재하다 보면 많은 식당 사장님들이 불경기라 장사가 안된다고 호소하면서 꼭 따라 나오는 문제가 한인타운의 치안이었다. 한 식당 사장님은 오래된 단골이 이제 한인타운 나오기가 무서워 식당도 자주 찾지 못하겠다고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인타운의 치안 문제가 업체들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기에 특집 기사 준비를 위해 한인 건축사무소 앤드모어파트너스의 션 모와 강혜기 대표를 인터뷰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두 대표는 윌셔 선상의 부지 세 곳을 선정해 건물 디자인을 발표했고 이를 통해서 LA한인타운의 미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그들이 한인타운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보행 편의성’이었다. 한마디로 한인타운이 걷고 싶은 동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 1.5세인 기자는 앤드모어파트너스가 문제점들로 지적한 것에 공감이 갔다. 과거와 달리 한인타운에는 한인 거주자가 줄고 있다.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많은 이들이 교외 지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이제 많은 한인에게 한인타운이란 삶의 터전이라기 보다는 ‘직장이 있는 곳’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한인타운이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상업이 발전해야 하고 상업이 활성화되려면 방문자들이 걷고 싶은 동네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두 대표는 한국의 강남역과 같은 번화가의 예를 들면서 보행자가 늘어나면 치안도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걷는 사람이 늘면 치안이 좋아지고, 치안이 좋아지면 걷는 사람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행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 제시한 것 중 가장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가장 사람이 몰리는 6가를 일방통행로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행 편의성이 크게 증대되고 6가는 걷기 좋은 길이 돼 한인타운을 찾는 방문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찜찜한 기분으로 회사로 돌아오는 10분간 ‘보행 편의성’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고 앤드모어파트너스가 제시한 방향성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누구나 걷고 싶어하는 생기 넘치는 동네가 되기 위해서, ‘보행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건물 디자인과 6가 일방통행로 아이디어에 대해 누군가는 실현 가능성을 먼저 물을 수도 있다. 과연 이런 디자인과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은 오롯이 남아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보행 편의성’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화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인타운 인근 EK갤러리에서는 앤드모어파트너스의 디자인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미주중앙일보 창간 50주년 기념 ‘함께한 50년, 함께할 50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많은 분이 찾아 주셨으면 좋겠다. 한인타운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한인타운 미래 한인타운 인근 한인타운 나오기 보행 편의성

2024-10-06

[기자의 눈] 범죄 영화의 부작용과 순기능

지난 2019년 10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한 영화 ‘조커’의 후속편인 ‘조커:폴리 아 되’가 오는 4일 개봉한다. 조커는 북미에서만 3억35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최근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2024)’ 전까지는 R등급 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작이었다. 후속작이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다.     조커는 아서 플렉이라는 광대가 빌런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다만 1편 개봉 당시 폭력 미화, 선동 등의 이유로 적지 않은 비판과 우려를 나은 바 있다. 조커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 메시지와 표현 방식에서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서가 점차 폭력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폭력과 정신 질환을 어떻게 묘사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영화에는 논란이 될만한 장면이 여럿 나온다.     먼저,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세 명의 남성을 살해하는 모습이다. 이는 아서가 경험한 끊임없는 사회적 억압과 소외가 폭력으로 분출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폭력의 정당화로 읽힐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듯한 메시지는 일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서가 살인을 저지른 후 공중 화장실에서 춤을 추는 장면도 논란거리다. 이 장면은 그가 폭력을 통해 자신의 억눌렸던 감정을 해방하는 상징적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특히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아서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인물로 등장하면서, 영화는 폭력과 정신 질환을 연결짓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서가 머레이를 살해한 후 고담 시 전체가 폭동에 휩싸이는 장면은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묘사하며, 사회적 갈등이 결국 폭력으로 폭발하는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문제는 이 폭동이 일종의 영웅 서사로 그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서는 개인적 복수심에서 비롯된 폭력을 행사하지만, 그는 사회적 불만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로 치환된다. 이러한 묘사는 사회적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설득력 있는 범죄자의 탄생을 그린 영화로 인한 모방 범죄 가능성도 논란 중 하나다. 영화의 부정적 파급력을 주의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일례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청년의 폭력과 이를 중화하기 위한 또 다른 폭력을 나타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1972)’는 개봉 이후 영국에서 모방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배트맨 영화 시리즈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당시에는 콜로라도주의 한 극장에서 조커처럼 머리를 주황색으로 염색한 범인이 관객들에게 최루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부상하기도 했다.   이에 조커 개봉 당시 이를 우려한 경찰은 전국 상영관과 인근 지역의 순찰 및 검문을 강화한 바 있다. 다행히 당시에는 모방 범죄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른바 웰메이드 영화들이 갖는 책임과 영향력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되새겨준다.   최근 LA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을 보면 주변에 항상 폭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지금의 LA는 사뭇 다르다. 경제 악화, 빈부 격차 심화, 강력 범죄 증가 등 LA가 영화 속 고담시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도 영화 개봉에 앞서 우려되는 점이다.   소외된 개인, 정신 질환,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중요하다. 사회가 올바른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후 모방 폭력이 아닌 해결 방안을 찾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우훈식 / 뉴미디어국기자의 눈 부작용 순기능 모방 범죄 r등급 영화 소외가 폭력

2024-10-01

[기자의 눈] 실패한 ‘프로포지션 47’의 교훈

북가주에 있는 리치먼드시는 과거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오명을 갖고 있었다. 인구수는 약 11만 명으로 LA 한인타운과 비슷한 숫자다. 그런데 이 도시는 다양한 사회적 프로그램을 통해  ‘위험 도시’라는 불명예를 벗어났다.     리치먼드는 1990~ 2000년대 초만 해도 살인 사건 비율이 높은 도시에 포함됐다. 하지만 작년에는 살인 사건이 8건에 불과했다. 이는 2020년(22건), 2021년(18건), 2022년(18건)과 비교해도 현저히 적은 숫자다.     리치먼드 시 정부는 범죄 증가의 원인이 사회적 문제에 있다고 보고 이의 해결에 집중했다. 강력한 처벌은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 정부는 2021년 ‘이웃안전사무실(Office of Neighborhood Safety, ONS)’을 신설해 폭력 문제 해결에 나섰고, 이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이니셔티브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에 지역 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2021년, 인근 도시인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가 경찰 개혁 약속을 철회하는 동안 리치먼드는 경찰 예산에서 300만 달러를 사회 서비스로 전환해 주목된다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2022년 리치먼드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은 298건으로, 2015~2019년 사이 어느 해보다 적은 숫자였다. 또한,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폭력 범죄는 766건에서 565건으로 26%나 감소했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위험했던 도시가 이제는 인근 도시보다 범죄율이 낮은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리치먼드시 ONS의 샘 본 커뮤니티 서비스 부국장은 “지역 사회 구성원들과의 협력 및 관계 구축이 총기 관련 사건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치적으로도 항상 논란이 됐다”고 설명했다.   가주도 지난 10년간 리치몬드 시와 비슷한 정책을 펼쳤다. 2014년 통과된 ‘프로포지션 47’이 그것이다.  프로포지션 47은 문서 위조, 사기, 절도, 마약 소지 등 비폭력 경범죄에 대한 형량을 낮추는 게 골자다. 교도소 수감 인원을 줄여 절감된 예산을 재범 방지 및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에 사용하자는 목적이었다. 경범죄자의 재활 지원을 통해 재범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리치먼드 시가 시행한 것과 의도는 동일하다.     하지만 프로포지션 47은 역효과만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가벼운 처벌을 예상한 범죄자들의 재범률은 오히려 높아졌고, 마약 중독 치료 등 재활 프로그램에 대한 자원 투입도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경범죄자의 재활은커녕 재범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포지션 47은 LA시에도 범죄율 급증을 초래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LA시에서 절도 범죄는 60% 증가했지만, 경찰 대응은 느슨해지고 법 집행의 억제력도 약화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LA의 치안 시스템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분석했다.   오는 11월 선거에는 프로포지션 47을 무효화하고 경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는 프로포지션 36이 투표에 부쳐진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당파를 초월해 71%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간 시행된 프로포지션 47이 처참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LA시는 범죄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리치먼드처럼 사회적 문제 해결의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인지, 강경 대응을 선택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적 문제 해결 방식이 효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정책을 쉽게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11월5일 선거에서 프로포지션 36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미래 LA시의 치안 문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유권자들의 결정을 기대해 본다. 장수아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프로포지션 교훈 프로포지션 47 리치먼드시 ons 사회적 문제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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